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색깔이라고 할까?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지만 정작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가 죽자 혼자서 괴로워 하다가 결국 마음 속의 님을 따라 목숨을 던졌다는 숲의 님프 후리지아의 전설...
천진난만함과 청순함의 꽃말을 지닌 노란색의 후리지아 꽃송이가 작은 유리잔에 꽂혀 책상 위에 놓여져 있다.
아마 큰 딸 녀석이 어제 밤에 꽂아 놓은 것 같다.
집사람이 나에게 시집올 때,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하얀 드레스에 노란색 후리지아 꽃으로 장식을 하고 나에게 다가왔었지..
레이스 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된 하얀 장갑을 낀 손을 건네 잡을 때 집사람의 작은 떨림을 느낄 수 가 있었던 기억이 바라보는 노오란 후리지아 꽃잎 속에서 다시 보여지는 것 같다.
이제 영락없는 봄이다.

뭐 짜달 시리 뚜렷한 영향이나 직접적으로 관계도 없으면서 전쟁이니 뭐니 하면서 덩달아 뭔가 게운 치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지금에도 시절은 변함은 여전하다.
봄은 누구에게나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한다고 했다. 더구나 자연을 더불어 즐거움을 찾는 우리네 낚시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 모를 만가지 들꽃들이 피어있고 종달새 높이 떠올라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파릇파릇 갈대 새순이 수면위로 머리를 들어내는 작은 수로 한 모퉁이에 다소곳이 앉아 가늘디가는 찌 톱이 스물스물 올라오기를 기대하며 바라보는 마음은 마치, 첫사랑 님과 찻집에서 마주보고 앉았을 때 수줍어 말못하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꿎은 냉수로만 달래야 하던 그 순간과 무엇이 다를까?
하늘이 보이지 않게 꽉 차버린 벚꽃나무 터널을 지날 때 우수수 떨어지는 꽃닢을 맞으며 달려가는 갯바위..
금오도 세상여에서, 거제도 외포에서, 청산도 목섬에서 징그럽게 큰 두꺼비를 연상하듯 엄청난 대물 감성돔의 모습을 보곤 하였지 옛날에...
파릇파릇 새순을 수면위로 살포시 들어내는 갈대 숲 속에서 올라오는 누런 황금빛의 비늘을 가진 자(尺)를 넘긴 붕어도, 날카로운 등지느러미를 치켜 새우며 위상을 자랑하는 바다의 백작 대물 감성돔에서 로시란테를 타고 기사임명장을 받으러 길을 떠나는 돈키호테 마냥 어줍잖게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덜렁 걸려들기도 하는 우람한 체구의 대형 벵에돔, 왕눈이 볼락까지 만삭이 되는 계절이다.
이른바, 또 한바탕 산란철 물고기를 잡자, 잡지 말자...라는 주제를 두고 한 바탕 낚시 계가 시끄러워지는 계절이기도 하지 아마..
고갈되어 가는 어족자원을 보호하기 위하여 산란철에 물고기는 잡지 맙시다...라는 주장은 제발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는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말과, 죽도록 사랑했기 때문에 뭐..어쨌다..라는 말과 같은 비 현실 적인 주장일 수밖에 없고 책임 없는 주장일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왜? 사랑하는데 헤어져야 할까?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에?
그럼, 적당하게 사랑하여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모든 것이 그렇지 않을까 라고 생각 해 본다.
그런데 여기에서 정작 중요 한 것은, 산란철 물고기를 잡자, 잡지 말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성...이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맞아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국민성은 빼고, 사람들의 개성이 모두들 다르기 때문에 일부 뜻 있는 몇몇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결국 소귀에 경 읽는 꼴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필자가 느끼는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와 버린 우리나라 연안 갯바위낚시도 기껏 잘 나가봐야 불가 3~4년, 엄청 길게 잡는다면 5~6년 안에 그 화려했던 막이 내려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연안 갯바위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산란철 물고기를 잡자 잡지 말자 라고 외치며 어 자원고갈을 염려할 때 한편으로는 생각지도 않았던 갯바위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왜 모르고 있었을까?
이 시점에서 더 심각한 것은, 그나마 이 바닥에서 비벼 살던 필자도 이쯤해서 일찌감치 손을 씻고 아파트 경비실이나 노상 주차장 관리 인부로 취직자리를 찾아 나서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코 농담으로 듣고 그냥 웃고 넘길 수 없는 심각한 사실을 우리는 한번쯤 생각 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몇 일전, 모 일간지 기자와 잠시 인터뷰를 가졌다.
필자와 훼밀리피싱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소담을 나누었다.
훼밀리피싱이라 함은 가족낚시를 뜻하는 것인데 가족 전체가 낚시를 취미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낚시질을 가는 그 자체를 어원으로 두는 것이다.
가족낚시나들이..가족나들이 낚시가 아니고 가족낚시나들이가 맞을 것 같다.
다시 말해서, 가족끼리 바닷가로 소풍 나와서 보니 주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낚시질이 엄청 재미있게 보인다. 그래서 아빠가 주변 가까운 낚시가게를 찾아가 낚싯대를 대여받고 소품과 소량의 미끼를 구매하여 잠시 낚시를 해보는 그런 가족 낚시가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가까운 바닷가 혹은, 저수지, 수로를 찾아서 가족 전체가 낚시를 하는 가족낚시를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얼마나 좋을까? 가족낚시 나들이...살랄살랑 불어오는 봄기운을 맞으며 가까운 물가를 찾아 오붓하게 즐기는 낚시는 생각만 해도 즐거울 것 같지만 생각처럼 쉽게 실행되지 않는 것 또한 가족낚시 나들이이다.
왜? 가족낚시 나들이가 쉽게 실행되지 않을까?
그것은 단 한가지의 이유, 여성들이 낚시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필자가 이 부분에서 엄청 연구를 하여 그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다소 오해가 발생할 수 도 있습니다.)
여성이 함께 하는 레저 치고 가족동반이 되지 않는 그런 레저는 없을 것 같다.
등산(산행)과 같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이클, 테니스, 골프, 볼링과 같은 스포츠도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이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낚시는 그렇지 못할까?
개성이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리 같은 가족일지라도 인간에게 잠재되어있는 사냥의 본능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그래서 그 본능적으로 가족 간에도 서로 뜻이 달라 질 수 가 있지 않을까..라고 도 생각 해 본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약간의 거리를 두고 각각 자리를 잡고 낚시를 하고 있었다.
한 동안 물고기의 물음이 없자 아들은 아버지가 낚시하는 곳을 향햐 소리를 친다.
아들 : “아버님!! 입질 좀 있습니까?”
아버지 : (연신 물고기를 낚아 내면서..)“아니 왜 이러지 오늘따라 영 신통찮네.. 너는 좀 어떻냐?“
아들 : 여기도 마찬가지로 통 입질이 없습니다. 식사나 하시죠?..
하면서 도시락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다가선 아들은 아버지께서 낚아놓은 많은 물고기를 보고는 어안이 막혀 물고기 한 번보고 아버지 얼굴 한 번보고, 아버지 한 번 쳐다보고 물고기 한 번 쳐다보고...
부자간에도 그러는데 부부간에는 어떻겠는가?
남편과 아내가 한 갯바위에서 서로의 포인트를 찾아 낚시를 한다.(꼭 누구라고는 말할 수 가 없다. 왜냐? 필자 신상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한참동안 제 나름대로 포인트에서 모습을 들어내지 않던 아내가 돌아와 남편에게 낚시바늘과 밑밥을 조금 더 달라고 한다.
남편 : (약간 귀찮은 듯이 짜증 썩인 말투로...)바늘 5개나 가져갔잖아..그리고 밑밥도 밑밥용 크릴새우 2개씩이나 가져갔잖아... 그걸 벌써 다 썼어?
아내 : (완전히 주눅이 들은 목소리로...)실수로 발에 걸려 밑밥이 물 속으로 떨어져 버렸고 바늘도 묶으려고 끄집어내다가 쏟아졌어요.. 목줄도 낡아서 그러니 조금 굵은 줄 있으면 조금 주면 안 돼?
그 때까지 남편은 입질도 받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내는 숨겨놓은 포인트에서 때글때글한 씨알 급이 감성돔을 두 마리씩이나 건져내어 놓고 감당하지도 못해 가져간 바늘을 모두 터뜨려 버리는 소동까지 벌이면서도 그 포인트를 남편에게 빼앗길 까봐 시치미 뚝 떼고 능청을 부리는 것이 바로 낚시이다.
부자간의 신뢰, 그리고 부부간에도 믿을 수 없는 비리(?)가 스스럼없이 나타나는 취미생활에서 무슨 얼어죽을 놈의 가족낚시 나들이가 성립될 수 있단 말일까?
그래도 가족낚시는 이루어 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따지고 보면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몫은 가장에게 있지만 가족을 다스리는 것은 철처한 아내의 몫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아내가 낚시에 취미를 갖게되면 가족낚시나들이는 이무런 문제가 없게된다.
만약 가족들 중 단 한 명이라도 가족낚시나들이에 불만을 나타내게되면 그 날로부터 불행이 시작되기 때문에 엄마가 찬성하면 아이들은 물론이요 며느리가 낚시가고싶어 안달인데 어느 시부모님이 “어멈아~ 그 있잖아..그래, 그래..가자..어이구 내팔자야...”
아내가 즐거우면 집안에 생기가 넘치게 되어있지 아마..
이렇게 가족낚시는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요 나아가 환경보호에 톡톡히 한 몫을 하게 된다고 필자는 감히 주장하고 싶다.
가족낚시나들이야 말로 훗날 깨끗한 환경, 죽어 가는 갯바위를 다시 되 살릴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낚시문화가 발전되지 않으면 결코 지금의 갯바위, 오염된 환경이 되살아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일깨워 주어야 한다.
우리가 저질렀으니 우리가 바로 고쳐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발상은 틀려도 많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느 천년에 이렇게 저렇게 바로 고쳐 후손들에게 물려줄까?
좋은 것도 보여 주면서 본받게 하는 것도 좋지만 어른들이 저질러 놓은 나쁘고 보기 싫은 것도 똑똑히 보여주면서 잘못된 것은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며 이렇게 해서는 인된다는 것도 가르쳐야 한다.
무슨 변명을 하든, 어떤 핑계를 대든 우리는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환경을 깨끗하게 보존해야하는 방법을 알려 주어야한다. 솔선 수범하여 쓰레기를 줍고 줒은 쓰레기를 가져와 쓰레기통에 담는 것까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쳐야 한다.
이러한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배운 아이들이야말로 장차 우리주변의 환경을 다스릴 수 있는 주역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 욕심을 다스려야하고 양보라는 것을 자리잡게 해야하는 쉽고도 너무 어려운 숙제가 주어진다.
남이 잘되는 꼬락서니를 보지 못하고 그저 한 마리의 물고기에만 여념하게 되면 가족낚시나들이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아내와 동행 출조가 이루어 질 수 가 없게된다. 낚시터에서만 귀찮은 아내가 아니라 낚시터에서도 꼭 필요한 아내가 될 수 있도록 아내를 낚시꾼 만들기에 들어가야 하는 것도 하나의 과제이다.
처음에는
“어머 어머, 어떻게.. 징그러워..하면서 별 오두방정을 다 떨던 아내도 감생이 침 한방이면 낚시터, 갯바위에 올라서는 동시에 남편보기를 완전히 홍싸리 칠 쭉지 보듯 하며 먼저 밑밥뿌리고 채비 담그기가 바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감생이 침을 맞은 아내가 완전한 꾼이 되어 완벽하게 채비를 만들어 사용할 때까지, 걸려든 물고기를 능숙하게 처리하기 전 까지는 남편은 스승일 수밖에 없으며 어느 제자가 그토록 스승의 말씀을 잘 듣는가 말인가? 완전히 90도 그 자체이지 암 그렇고 말고...
그 뿐인가, 갯바위 청소하나는 확실하게 한다는 것과 주위가 지저분한 꼴을 보지 못하는 것이 여성들의 본능인 것 같아 산란철 물고기 잡지 말자는 것보다는 봄철 아내 낚시꾼 만들기 운동이 어쩜 환경보호에 일조 하는 의미에서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호의 원고는 좌표 잃은 페트리어트 마냥 중심도 없이 완전히 빗나가 버린 것 같다.
그 동안의 불황을 털고 여기 저기 연안 갯바위에서는 감성돔낚시가 성황을 보이고 있다. 한참동안 굶주렸던 꾼 들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여기저기 씨알 급의 감성돔 소식이 전해진다.
예부터 이르기를 장난 잘못하면 꿩 놓치고 매 잃는 꼴 되기 십상이니 정보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소신껏 갯바위를 찾아 봄철 당찬 감성돔의 손맛을 느껴보시기 바란다. 소나기는 비켜 가라고 했듯이 감성돔낚시 테크닉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욕심내어 많이 잡지말고 적당히, 그리고 먹지 않을 물고기는 살려주는 그런 여유도 가져보고 떨어진 밑밥 잔해까지 치우지 못하겠지만 버려진 쓰레기 쓰다버린 낚싯줄은 꼭 수거 해 오는 거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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